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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 『철쭉제』를 통해 본 기억과 상처의 문학-피처럼 붉은 철쭉 아래, 우리는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happy-sweetpota 2025. 6. 30. 00:36

문순태의 『철쭉제』는 한국 전쟁이 남긴 상흔과 세대 간의 분열,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원한의 감정을 어떻게 ‘기억’하고, ‘화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지리산 철쭉이 만개하는 산길에서 펼쳐지는 이 소설은 단순한 복수의 드라마가 아니라, 한국 현대문학이 감당해 온 윤리적이고 공동체적인 질문을 압축해 놓은 하나의 문학적 제의(祭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그 후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작품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린 두 인물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살아남은 인물로,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는 복수를 꿈꾸며 악착같이 공부하고, 마침내 검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원흉으로 여겨지는 박판돌이라는 인물을 찾아 나서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단순한 응징의 서사가 아닌, 한국 사회의 얽히고설킨 역사적 고통의 구조와 마주하는 계기로 전개됩니다.

 

소설의 배경 지리산

소설의 배경인 지리산은 전쟁기의 유격대 활동과 빨치산 투쟁, 그리고 근대 이전의 봉건적 차별까지 짊어진 역사의 심장부입니다. 주인공과 박판돌은 철쭉이 흐드러진 세석평전을 향해 함께 오릅니다. 이 산행은 곧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며, 동시에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결단이 교차하는 상징적 길입니다. 이 여정에서 독자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도식이 얼마나 취약하고 복잡한지,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수많은 역사적 층위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체감하게 됩니다.

 

주인공과 박판돌의 의미 관계

문순태의 『철쭉제』에서 주인공과 박판돌의 관계는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 구도가 아닙니다. 이 관계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통과한 한국 사회 내부의 깊은 균열을 상징하며, ‘복수와 화해’, ‘기억과 망각’, ‘윤리와 생존’ 사이의 복잡한 감정적·역사적·철학적 역학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통해 문순태는 전쟁이 남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폭력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가?”

주인공은 전쟁 중 아버지를 빨치산에게 잃고, 그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는 출세를 통해 복수를 다짐하고, 결국 검사로서 고향으로 돌아와 박판돌이라는 남자를 추적합니다. 그가 확신하는 아버지의 살해자는 바로 박판돌입니다. 그러나 이 인물과의 만남이 전개되면서, 이 관계는 단순한 단죄의 구도가 아닌 윤리적 대면과 인간적 성찰의 장으로 변화합니다.

박판돌은 단지 ‘악당’이 아닙니다. 그는 한때 천민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온 존재로, 식민지 시기와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억압된 자로서의 현실을 살아냈습니다. 그가 좌익에 가담하게 된 과정은 단지 이념적 신념이 아니라, 생존과 복수, 그리고 사회적 보복의 복합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박판돌은 한국 사회가 낳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 점을 통해 독자에게 "가해자는 언제나 악인인가?", "피해자는 언제나 선한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주인공은 '도덕적 우위에 서서 복수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순진하고 얕은 감정인지 깨닫게 됩니다. 박판돌과의 산행, 철쭉제라는 의례, 그리고 마지막 눈물의 순간은 그 깨달음의 과정이며, 그가 복수심이라는 감정을 넘어서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관계는 개인과 개인이 맺는 관계를 넘어, 전쟁 이후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과 대립이 어떻게 반복되고 또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를 제시하는 하나의 모형(model)입니다. 박판돌은 물리적 살인자로 남지만, 동시에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주인공은 피해자이자 법의 대리인이지만, 끝내 인간적인 연민과 윤리적 결단을 통해 그 관계를 재정립합니다.

이처럼 주인공과 박판돌의 관계는 단순히 복수의 완성이나 실패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첨예한 질문—“과거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한 작가의 깊은 성찰이며, 화해 가능성에 대한 미학적, 윤리적 제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철쭉제』는 단지 전쟁 문학을 넘어서, 기억과 용서, 인간성과 책임을 다룬 윤리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입니다.

 

철쭉제의 의미

이 작품의 백미는 ‘철쭉제’라는 민속 의례에 있습니다. 이 제의는 단순히 망자를 기리는 의식이 아니라, 복수와 기억, 상처와 용서를 함께 담아내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철쭉’은 피처럼 붉은 색을 띠며,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혼을 기리는 꽃으로 활용됩니다. ‘제’는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과 교감하며, 스스로의 고통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편이 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단지 사적인 복수를 포기한 한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과거와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공동체적 의식을 엿보게 됩니다.

 

철쭉제의 문학사적 의의

『철쭉제』는 전쟁의 비극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 서사는 결코 전쟁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는, 전쟁이 만들어 낸 물리적 폭력보다, 그 폭력이 남긴 정서적, 윤리적 균열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박판돌은 단지 한 인간의 삶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불균형한 구조, 차별과 억압의 산물로 제시됩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지주계층의 모멸을 견디며 살아온 천민 출신입니다. 그의 생존 전략은 결국 좌익과 결탁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계기가 됩니다.

이 복잡한 맥락은 『철쭉제』가 단지 감정의 해소가 아닌, 역사와 인간 사이의 윤리적 매듭을 풀고자 한 시도임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산행을 통해 점차 복수의 감정보다, 진실의 복잡성과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게 됩니다. 박판돌 역시 ‘가해자’라는 낙인이 아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 한 생존자로 그려집니다. 결국 이 작품은 ‘누가 옳고 그르냐’는 도덕적 재단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이 점에서 『철쭉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폭력과 상처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산업화의 그늘, 지역적 차별, 민주화의 희생, 젠더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화 등은 모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기억’의 문제이자, ‘화해’의 가능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단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과거 소설이 아니라, 오늘날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 해결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현대적 우화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화해’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마음을 푸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기억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의례화하며,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승인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작품이 ‘철쭉제’라는 민속 의례를 중심에 놓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기억은 사라지고, 의례화되지 않은 용서는 반복되는 폭력을 낳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마침내 박판돌과 함께 철쭉 앞에서 아버지를 위한 제를 올립니다. 그리고 박판돌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 눈물 흘리며 무릎 꿇습니다. 주인공은 그 앞에서 분노보다 더 큰 슬픔을 느끼고, 끝내 복수를 포기합니다. 그 결정은 비겁하거나 나약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에게 내린 가장 엄정한 윤리적 명령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을 지켜낸 행위입니다.

 

 

문순태- 철쭉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이처럼 『철쭉제』는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원한을 넘어선 용서,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 상처를 넘어선 윤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기억은 어떻게 공동의 윤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철쭉꽃이 만개한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열린 ‘제사’라는 형식 안에 담겨 있습니다. 문학은 그렇게 말 없는 꽃과 형식, 그리고 한 인간의 침묵을 빌려 우리가 쉬이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말해 줍니다.

 

마무리

문순태의 『철쭉제』는 이처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말하게 하고, 말할 수 없던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문학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윤리적 성취의 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작품을 지금 이 순간에도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