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를 품은 가족 이야기, 염상섭의 『삼대』
염상섭의 소설 『삼대』는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을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조부, 부친, 손자로 이어지는 '삼대(三代)'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전통과 근대, 세대 간의 갈등, 물질에 대한 욕망,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전체를 담아낸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고등학생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1. 조부, 부친, 손자: 서로 다른 시대의 세 인물
『삼대』의 제목처럼, 이 작품에는 세 세대가 등장합니다. 조부 조의관은 전통을 지키려는 구시대 사람으로,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가문의 체면을 지키려 애씁니다. 반면, 그의 아들 조상훈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신지식인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개신교 목사이면서도 사생활은 엉망이고, 가정과 사회 모두에 책임을 다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손자 조덕기는 조부와 부친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신세대 청년입니다. 그는 조부의 전통에도, 아버지의 위선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어느 한쪽에 명확히 서지 못하고 갈등합니다. 독자는 이 삼대를 통해 조선 사회가 전통에서 근대로 넘어가며 겪는 갈등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가족 안의 갈등은 사회의 축소판
『삼대』에서 가족은 단순히 피를 나눈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로 묘사됩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가치관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충돌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조부는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지키려 하고, 아들은 종교와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며, 손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려 합니다.
이 갈등은 단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바로 일제강점기의 조선 사회가 겪고 있던 가치관의 충돌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유교 질서, 서구 문명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 그리고 신식 교육을 받은 청년들의 이상이 한 가족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죠. 이 점에서 『삼대』는 ‘가족소설’이면서 동시에 ‘사회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3. 물질에 대한 욕망과 인간의 타락
작품 속 갈등은 단지 생각의 차이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돈, 재산, 권력 같은 물질적 요소들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이 소설은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조부 조의관은 제사와 가문의 전통을 이유로 많은 재산을 축적했고, 그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들 간의 분열이 발생합니다.
아들 조상훈은 자선과 교회를 핑계로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쓰려 하고, 후처 수원댁은 그 재산을 빼앗기 위해 조의관을 독살하려는 음모까지 꾸밉니다. 이처럼 『삼대』는 ‘돈이 사람을 바꾼다’는 진실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동시에, 식민지 시대 조선의 혼란한 도덕의식을 고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4. 손자 조덕기의 성장, 그리고 책임의식
조덕기는 작품에서 가장 성숙한 인물로 성장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하고, 친구 김병화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혀갑니다. 그는 단순히 집안의 후계자일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의 미래를 짊어진 청년으로 묘사됩니다.
덕기는 법학을 공부해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일본 유학과 대학 진학은 좌절되었지만,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은 뒤에는 책임감을 갖고 집안을 이끌어가려 합니다. 이처럼 『삼대』는 한 인물의 성장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올바른 주체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5. 염상섭 문학의 대표작으로서의 의의
『삼대』는 『만세전』과 함께 염상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사건 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물의 심리와 사회 구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한국 근대 장편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습니다. 특히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약함과 가능성을 함께 조명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문학사적으로는 이광수의 『무정』이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면, 『삼대』는 '근대 장편소설의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진오의 『현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등과 비교해도, 『삼대』는 시대상과 인간상을 가장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