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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분석자료실

모의고사 출제작 「이슬람 정육점」 깊이 읽기: 편견과 연대의 이야기

손홍규 작가의 단편소설 「이슬람 정육점」은 단순한 서사 구조를 넘어서 우리 사회 속 ‘타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묻는 소설이다. 제목 속 '이슬람'이라는 낯선 단어와 '정육점'이라는 일상적인 단어의 충돌은 이 작품이 다루는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다문화 사회로 이행 중인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시선과 경계, 그리고 공존의 가능성을 성찰하게 만든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이슬람 정육점 깊이 읽기

 

줄거리 요약: 하산 아저씨와 ‘나’의 거리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어느 날, 동네에서 이슬람 정육점을 운영하는 하산 아저씨에게 지도를 함께 붙이자는 제안을 받는다. 두 사람은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을 실천하면서도 정육점을 계속 운영하는 하산 아저씨의 일상을 나름의 거리에서 관찰한다. 처음에는 낯선 외국인을 향한 편견과 거리감이 있었지만, 점차 화자는 하산 아저씨의 고요한 삶의 태도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에 이끌린다. 결국 화자는 하산 아저씨가 끝내 가게 문을 닫은 후에도,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 믿으며 그를 기다리는 입장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낯선 타인'을 이해하는 감정의 확장을 요청한다.

 

인물 분석: 침묵과 기다림의 태도

하산 아저씨는 말이 적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말로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정육점을 운영하면서도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을 실천하는 모습은, 겉으로는 모순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강한 신념과 자긍심을 드러낸다. ‘나’는 처음엔 그런 하산 아저씨를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인식하지만, 점차 그의 침묵 속에서 진심과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게 된다. 하산 아저씨는 말 대신 행위로, 고집 대신 인내로 자신을 드러내는 인물이며, ‘나’는 그를 기다림으로써 조용한 존중과 공존의 태도를 배운다.

 

상징과 주제: 지도, 라마단, 고기라는 기호들

이 소설에는 몇 가지 중요한 상징이 등장한다. 먼저 ‘지도’는 물리적 장소의 안내 도구이자, 타인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상징물이다. 완성된 지도를 붙이며 두 인물은 공통된 인식의 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으로 ‘라마단’은 종교적 신념과 자기 절제의 상징이다. 금식 중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하산 아저씨는 그저 신념을 실천할 뿐이지만, 그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경외 혹은 불편함을 준다. 마지막으로 ‘고기’는 생명과 죽음, 문화의 차이를 모두 담고 있는 기호다. 하산 아저씨가 다루는 고기는 그저 식재료가 아니라, 할랄 방식에 따라 의미 있게 다뤄지는 신념의 산물이다. 이 모든 상징은 타자에 대한 오해, 불신, 거리감이 결국 공존과 존중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교육적 활용: 다문화·윤리 교육과의 접점

「이슬람 정육점」은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문화 감수성 교육에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주제로 삼고, 작품 속 인물 분석을 통해 편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할 수 있다. 더불어 윤리 수업에서는 '공존', '문화 상대주의', '종교적 자유'와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토론 활동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하산 아저씨의 단식과 노동은 모순인가, 존중받아야 할 실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찬반 토론을 진행하면, 문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유의미한 수업이 가능하다. 또한 창의적 글쓰기 활동으로 “나와 하산 아저씨가 다시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눌까?”를 상상해보는 에세이도 좋은 실습이 될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는가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은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시의적이며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낯선 존재를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혹은 타인의 침묵 속 진심을 읽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작품은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조용하고 소소한 일상을 통해 연대와 공감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하산 아저씨는 떠났지만, ‘나’는 그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이며,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